N년 만에 다시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관계의 모든 단계를 철학적으로 파고드는 이 책의 인상 깊은 구절과 솔직한 후기를 담았습니다.

📋 글의 순서
국내 판매 70만 부 돌파. 한 권의 책이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지어 70만 부 판매를 기념해 새로운 옷을 입은 리커버 에디션까지 출간될 정도라면, 그 인기에는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지금 소개해 드릴 책은 바로 그 주인공,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입니다.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맺고, 이별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과정을 집요할 만큼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시대를 넘어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습니다. 수년 전 책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완독 하지 못했던 이 책을 다시 펼쳐 들고,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왜 이 책이 '사랑의 고전'이라 불리는지, 왜 70만 독자가 이 책을 선택했는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책 정보
- 제목: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원제: Essays in Love)
- 저자: 알랭 드 보통
- 장르: 소설
- 출판사: 청미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70만 부 기념 리커버) | 알랭 드 보통 - 교보문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70만 부 기념 리커버) | 보통의 연인들을 위한 보통의 연애담 국내 70만 독자가 선택한 알랭 드 보통의 최고의 소설 연애가 사랑이 되는 순간, 우연이 사랑이 되는 순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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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인공 '나'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클로이'와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24개의 챕터로 나누어 서술합니다. 단순한 연애 소설을 넘어, 사랑의 각 단계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와 모순을 철학, 심리학, 문학을 아우르며 지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2. 다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펼친 이유
사실 이 책과의 첫 만남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오래전 구매해 두고도 몇 장 넘기지 못한 채 책장 한편을 지키고 있었죠. 당시에는 사랑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다소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책을 펼친 지금, 완전히 다른 독서 경험을 했습니다.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놀랍게도 지금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기에 이 문장들이 이토록 와닿는 걸까?' 하는 궁금증, 바로 그것이 미완독으로 남았던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3. 사랑의 시작: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특정 인물과 사랑에 빠지게 될까요?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사랑의 시작을 냉철한 시선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상대방의 완벽함 때문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을 때, 그 빈 공간을 우리의 희망과 이상으로 채워 넣으며 사랑을 시작합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완벽한 사람이라 믿고, 그에게서 나의 결핍을 채워줄 구원자를 발견하는 것이죠.
어쩌면 사랑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앎이 아니라, 나의 바람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4. 사랑의 과정: 관계의 민낯과 마주하는 순간
뜨거웠던 사랑의 시작을 지나 관계가 깊어지면, 우리는 서로의 민낯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가득 찼던 공간에 현실의 차이와 결점이 들어서기 시작하죠. 작가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기제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냅니다.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답을 찾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자신의 문제의 복사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 믿었던 상대에게서 나의 결핍과 똑같은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실망감, 그리고 사랑이 보답받는 순간 오히려 상대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마르크스주의적 순간'까지. 작가는 사랑하면서 겪는 복잡하고 이중적인 감정들을 명쾌하게 정의 내립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와 갈등 속에서도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은 무엇일까요? 작가는 유머와 공유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
닳고 닳아버린 '사랑한다'는 말 대신, 오직 두 사람만이 의미를 아는 '마시멜로 한다'는 표현처럼, 공유된 경험과 유머는 둘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만들고 친밀감을 키워나갑니다. 함께 좋아하는 것을 넘어, 함께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쌓이는 유대감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할 수 있습니다.
5. 사랑의 종말: 이별, 그리고 지독한 성장통
영원할 것 같던 사랑에도 끝은 찾아옵니다. 작가는 사랑의 종말을 겪으며 한 인간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 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며 고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상처받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신 '삐침'이라는 방어기제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가슴 아픈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이별 후 고통을 미화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예수 콤플렉스'라는 심리까지 분석하며, 자기혐오를 피하기 위해 약점을 미덕으로 바꾸는 인간의 연약한 본성을 파고듭니다. 하지만 이 지독한 성장통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사랑은 고통스럽고 비합리적이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우고 지혜를 얻으며 한 뼘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6. 총평: 알랭 드 보통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형광펜 하나를 다 쓸 정도로 밑줄 그을 문장이 많았던 이번 독서는 제게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이 책을 20대에 썼다는 사실은 몇 번을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토록 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사랑을 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를 관찰하고 성찰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문장들 앞에서, 그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탐험하는 그의 지혜로운 통찰력은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라 믿습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사랑 때문에 웃고 울고 있다면, 혹은 지나간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면, 이 책은 당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가장 지적인 친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들은 또 어떤 지적 즐거움을 선사할지, 그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 책의 후속작 격인 <우리는 사랑일까>에서는 뜨거운 사랑, 그 이후의 현실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사랑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일까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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