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유래에 관한 글입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원래 최고급 요정 '대원각'이었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감동받은 김영한이 1000억 재산을 통째로 시주한 사연, 그리고 시인 백석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까지 한 번에 정리해 드립니다.
KBS 2TV 셀럽병사의 비밀이 2026년 5월 26일 방송에서 법정스님과 길상사 창건 비화를 다루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길상사'가 훅 올라왔죠.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불교 사찰인데요, 원래 1970~80년대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大苑閣)'이 1997년 절로 바뀐 곳이랍니다.
그런데 이 절, 그냥 사연 있는 절이 아니에요. 한 여성의 이루지 못한 사랑, 10년에 걸친 집념, 거기다 "1000억은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는 명언까지 켜켜이 쌓인 공간이거든요. 이야기가 꽤 깊습니다. 차근차근 풀어드릴게요.
📌 길상사, 한눈에 보는 핵심 정보
- 위치: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성북동)
- 소속: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 창건: 1997년 12월 (전신은 요정 대원각)
- 입장료: 무료, 연중무휴, 일주문 기준 오전~오후 7시
- 시주자: 김영한(1916~1999, 법명 길상화) · 시가 약 1000억 원 규모
- 창건 주도: 법정 스님(1932~2010)
- 이름 유래: 법정스님이 김영한에게 선물한 법명 '길상화(吉祥華)'에서
- 특이사항: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김영한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
📋 목차
길상사 기본 정보
방문 전에 알아두면 좋은 기본 정보 먼저 정리해 드릴게요. 입장료도 없고 연중 개방하는 도심 사찰이라 언제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에요.
| 항목 | 내용 |
|---|---|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
| 개방 시간 | 오전~오후 7시, 연중무휴 |
| 입장료 | 무료 |
| 대중교통 | 성북02 마을버스 이용 (입구까지 직접 운행) |
| 주차 | 정문 언덕 위 무료 주차장 이용 가능 |
| 소속 |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말사 |
참고로 걸어서 올라가면 내내 오르막이라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있거든요. 마을버스 타고 올라간 다음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코스가 훨씬 편하답니다. 주변에 성북구립미술관, 최순우 옛집도 있으니 반나절 성북동 나들이로 묶어 다녀오기 딱 좋은 동선이에요.
요정 대원각, 화려했던 시절

지금은 고즈넉한 사찰이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서울 권력의 중심부였습니다.
대원각(大苑閣)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꼽히던 최고급 요릿집이었어요. 국내 최고 권력자들은 물론, 일본 수상급 인사들도 드나들던 곳이었으니까요. '요정 정치'라는 말이 따로 생겨날 만큼, 당시 요정은 그냥 밥집이 아니었거든요. 정치적 밀실 협상이 이루어지는 사실상의 권력 공간이었던 거죠.
대원각의 주인은 김영한(1916~1999)이라는 여성이었는데요. 그는 16살 때 조선권번(朝鮮券番, 기생 교육기관)에 들어가 궁중아악과 가무를 배우며 '진향(眞香)'이라는 기생 이름을 얻었습니다. 해방 이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1950년대에 지금의 길상사 자리에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열었는데, 그게 점점 커지면서 대원각이 된 거예요.
7천여 평의 땅에 건물만 40여 채. 1990년대 초 기준 시가가 1000억 원이었다고 하니,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000억 원이 넘는 규모랍니다. 이걸 통째로 절에 내놓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유가 정말 놀랍습니다.
백석과 자야, 이루지 못한 사랑
대원각이 절이 된 진짜 이유는 김영한의 개인사에 있어요. 그중에서도 시인 백석(白石)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이걸 모르면 길상사의 절반도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백석과 진향의 만남

1930년대, 젊은 시인 백석은 기생 진향과 사랑에 빠집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직접 지어줬는데요. 한밤중을 뜻하는 이 이름, 그냥 예쁘라고 지어준 이름이 아니에요. 당신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평생 담겠다는 뜻이었죠.
1938년, 백석은 시 한 편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예요. 눈이 푹푹 쏟아지는 밤, 사랑하는 여인과 산골로 들어가 흰 당나귀 타고 둘이서 살자는 내용이잖아요. 김영한은 훗날 회고록 《내 사랑 백석》에서 그 시의 나타샤가 바로 자신이라고 밝혔습니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헤어짐, 그리고 분단
그런데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어요. 백석은 만주로 떠났다가 해방 이후 북쪽으로 돌아갔고,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리면서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 후 김영한은 서울에서 혼자 대원각을 일구며 살아갔어요. 그런데 그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냐면,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돌아오면 평생 그날만큼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2억 원을 기부해서 '백석문학상'을 직접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루지 못했지만 절대 잊지 않은 사랑이었던 거죠.

훗날 기자가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냐"고 묻자, 김영한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합니다."
김영한(자야), 대원각 시주 당시

이찬원이 방송에서 "언빌리버블"이라고 했는데, 저도 처음 들었을 때 그 말밖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법정스님과 10년의 설득

그럼 왜 하필 법정스님이었을까요? 이것도 이유가 있어요. 시작은 책 한 권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영한은 법정 스님(1932~2010)이 쓴 에세이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불필요한 것은 갖지 말라'는 무소유의 가르침이, 화려한 요정을 운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늘 공허함을 안고 살던 그에게 크게 와닿은 거죠.
1987년, 김영한은 법정 스님을 직접 찾아가 대원각 땅과 건물 전부를 드릴 테니 절을 지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는 스님 입장에서 수천억 재산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거랍니다.

근데 김영한이 거기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죠. 거절당하고 나서도 10년 가까이 법정 스님을 꾸준히 찾아가 같은 부탁을 되풀이했어요. 그 집념 앞에 결국 스님도 뜻을 바꿨고, 1995년에 대원각을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로 등록했습니다. 당시 사찰 이름은 '대법사(大法寺)'였어요.

요정이 절이 된 날, 길상사 창건
1997년 12월, 드디어 공식 개원법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사찰 이름도 지금의 '길상사'로 바뀌었어요.
'길상사'라는 이름의 유래

이름의 기원이 꽤 감동적이에요. 법정 스님이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선물로 드렸는데요. '길하고 상서로운 꽃'이라는 뜻이랍니다. 스님이 그 법명을 그대로 따서 절 이름을 길상사(吉祥寺)로 지은 거예요. 요정 주인이었던 한 여성의 이름이 절 이름이 된 거잖아요. 생각할수록 남다른 스토리죠.
개원법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

개원법회 당일에는 예상치 못한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가톨릭의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직접 자리해서 축사를 전한 거예요. 추기경은 "길상사가 도시인들의 영혼의 쉼터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고,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답례로 명동성당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종교를 초월해서 서로를 존중한 아름다운 장면이었죠.
김영한의 소원
수천 명의 대중 앞에 선 김영한은 개원법회에서 짧은 소원을 밝혔습니다. 이 말이 참 마음에 남아요.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1997년 12월, 길상사 개원법회 당일

김영한은 1999년 11월 세상을 떠났는데요. 유언으로 "눈이 오는 날 유해를 길상사 경내에 뿌려달라"고 했습니다. 백석의 시처럼, 눈 내리는 날을 그리워했던 그의 마음이 끝까지 이어진 거였죠.

지금의 길상사, 무엇을 볼 수 있나

이 이야기를 알고 경내를 걸으면 같은 공간이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곳곳에 이야기가 스며 있어서 천천히 둘러볼수록 좋은 곳이에요.
- 진영각(眞影閣): 법정 스님의 영정, 친필 원고, 유언장이 전시된 공간이에요. 생전에 스님이 즐겨 앉던 나무 의자도 그대로 남아 있고, 스님의 유골도 바로 이 건물 오른편 담장 아래 모셔져 있답니다.
- 길상헌(吉祥軒): 계곡 건너편 숲 속에 조용히 자리한 건물로, 김영한이 생전에 머물던 곳이에요. 시주자의 사당과 공덕비도 이 근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관세음보살상: 가톨릭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선생이 만든 작품인데요. 성모 마리아상과 닮은 독특한 분위기라 처음 보면 살짝 놀랄 수도 있어요. 그게 바로 길상사의 특별함이기도 합니다.
- 극락전 앞 꽃무릇밭: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꽃무릇이 정말 장관이에요. 사진 찍으러 일부러 찾아오는 방문객이 많을 만큼 아름다운 명소랍니다.
- 범종루: 대원각 시절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팔각정 자리에 들어선 공간입니다. 김영한이 그토록 바라던 범종 소리가 바로 여기서 울려 퍼지고 있어요.

사찰 꼭대기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도 해요.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거랍니다. 2025년에는 스웨덴 왕세녀 빅토리아 부부가 공식 외교 일정으로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겠죠.
자주 묻는 질문 (FAQ)
Q. 길상사는 원래 무엇이었나요?
A.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大苑閣)'이라는 최고급 요정이었습니다. 1970~80년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불렸으며, 1997년 사찰로 바뀌었습니다.
Q. 길상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요?
A. 법정 스님이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선물했고, 이 법명에서 '길상사'라는 사찰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Q. 백석과 길상사는 어떤 관계인가요?
A. 대원각 주인 김영한은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김영한이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다 전 재산을 절로 바꾸었기 때문에, 길상사에는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Q. 길상사 입장료는 얼마인가요?
A. 길상사는 입장료 없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연중무휴로 오전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합니다.

길상사는 역사가 겨우 30년이 채 되지 않은 절이에요. 그런데 이 짧은 역사 안에 이루지 못한 사랑, 10년의 집념, 무소유의 정신이 다 녹아 있잖아요.
알면 알수록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성북동 한 자락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랍니다. 셀럽병사 보고 길상사가 궁금해지셨다면, 봄꽃이나 가을 단풍 물들 때 한번쯤 직접 걸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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